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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그 느림의 미학에 대하여카테고리 없음 2024. 10. 29. 23:10
날씨가 너무 좋은 가을입니다. 일 년 내내 이런 날씨만 같으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워낙에 추위를 싫어하는 저는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점부터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막상 겨울이 오면 나름 적응을 하면서도 저는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해마다 이 무렵 올해 최강 한파가 온다는 뉴스가 먼저 터져 나오면 덜컥 겁부터 먹습니다.
그러나 이 가을은 정말 좋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은 색색이 물든 낙엽도 기분을 좋게합니다.
저는 산책을 하며 가을을 만끽하면서 걷다 어느 순간 땅만 보고 걷고있는 제 자신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순간 다시 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고 고쳐 걷지만 금세 땅에 구르는 낙엽과 가을 벌레들과 도토리에 시선이 꽂혀집니다.
땅을 보러 산책 왔나.
하며 제 자신을 탓하지만 한편으론 여유없는 제 자신을 의식하게 됩니다.
빨리 돌고 가자. 하는 급한 마음이 드는 거죠. 집에 가도 막상 할 것이 없는데도 마음만 습관처럼 급해진 것입니다.
여유로운 산책은 몸도 건강해지지만 마음도 치유하는 효력이 있기에 이대로 급한 산책은 제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제 나름 느림의 미학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잘 빤 욕실 슬리퍼를 햇살 좋은 베란다 화분 옆에 놓아 두었었는데 잠시 베란다를 바라 볼 때마다 눈에 띄는 하얀 욕실 슬리퍼가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슬리퍼를 치우지 않고 놔두었는데 이번에는 그 슬리퍼 옆에 있는 화분이 더 예쁘게 보이더군요. 그 순간 슬리퍼가 제게 잠시 여유로움 주었다고 생각했고 그 여유로움을 느끼자 비로소 그 주위의 것들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겐 놀라운 발견이었어요. 그것은 제 나름 깨달은 느림의 미학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상황이지만 이 평범함이 평안함을 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런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여유로움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식탁을 잘 정돈하고 가끔 저와 가족들이 쓰던, 혹은 먹던 것을 식탁 위에 툭하고 하나 일부러 놓아둡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방법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일상에서 자신을 위한 여유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앞으로 달려가는 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여유로움을 느끼는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차피 살아가는 것이니 좀더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지 않을까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잘 치운 테이블에 올려 두고 두고두고 보는 것도 좋습니다. 왜 구지 마셔야 하나요. 구경만 하는 것도 여유롭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가지치기한 나무들을 베란다 테이블에 툭 놓아두는 것도 좋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아마도 제 뇌에서 이 순간의 여유로움을 더 즐거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잘 보지못하는 곳을 찾아 보는 것도 좋습니다.
따라서 저는 산책을 하며 이런 여유로움을 찾으며 걷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갔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산책을 하다 우연히 땅속에 숨어지내던 새끼 쥐도 발견한 적도 있었다니까요. 돈도 발견하고
심지어 새들이 가로등에 올라가 바쁜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것도 보았고. 철없는 까치가 총총 거리며 사람 앞을 무심코 지나가는 뻔뻔함도,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예쁜 가디건의 귀여운 물방울 무늬의 춤사위도.
이렇게 걷다 찾아보면 우리가 여유롭게 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것은 많더군요.
급한 마음에 놓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미처 발견하지 못할 뿐이었어요.
저는 이런 여유로운 모습들을 통해서 인간으로써의 그 깊은 내면을 정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힘들고 지칠 때도 마음을 다시 잡아 보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도 줍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덥다 춥다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마음은 어떤 가요?
세월은 흘러 갑니다. 가지 말라고 해도 갑니다. 속절 없는 세월.
그럼 우리의 마음도 해마다 그렇게 흘려보내야 할까요?
이제 한 달을 살아도 일 년을 살아도 나에게 여유를 주는 선물을 주면서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어떤 물질 적인 것보다도 마음을 움직여주는 작은 속삭임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주 솔솔합니다. 마음도 편안해지고요.
추워지는 계절 인터넷 주문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더 꼭꼭 닫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여유를 가져야 주위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유로움을 갖고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이 인생의 질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여유는 경쟁이 필요하지 않아요. ^^